학개서 2장 1절 ~ 9절(참된 예배)
※ 아래의 드라마 바이블 사이트를 통해 성경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https://dramabible.org/bible/37/2/
1]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
3]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아멘.
1. 말씀 요약 및 묵상
세상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며 비판할 때가 있습니다. 그냥 설화나 꾸며낸 이야기 정도로 평가하는데, 하지만 성경이 진실임을 나타내는 수 많은 증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실질적인 세계사와 성경의 사건들이 일치한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성경에 등장하는 연대와 날짜들을 보면, 이런 사실들을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제부터 본 학개 말씀 속에서도 선지자 학개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날짜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먼저 대략적인 성전 재건에 대한 개요를 말씀을 드리면, 유대인들이 주전 538년에 포로 귀한을 합니다. 그리고 2년 후 주전 536년에 성전 재건이 시작 되요. 그런데 성전 재건을 방해하는 자들로 인해 성전 재건이 중단하게 됩니다. 그리고 16년이 지난 주전 520년, “다리오 왕 제 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에 첫 번째 말씀을 통해 성전 재건에 대한 명령을 하십니다. 이 명령을 가지고 “다리오 왕 제 이년 6월 24일”에 성전 재건이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은 두 번째 말씀인데, 성전 재건을 시작하고 27일이 흐른 7월 21일에 말씀이 임합니다. 두 번째 말씀을 주신 이유는 성전 재건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 때문이예요. 어떤 문제가 있었냐고 하면, 성전 건축을 준비하려고 땅을 개간하고, 재료들을 준비하는데, 과거 옛 성전에 대한 기억이 있는 노인들의 눈에 새 성전의 규모가 너무 초라한 거예요. 옛 성전의 영광을 기억하며, 큰 기대감으로 공사를 시작했는데, 과거의 영광에 비해 너무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모습에 도리어 절망하게 됩니다. 이렇게 상심 속에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오늘 두 번째 말씀을 주셨습니다. 두 번째 말씀의 핵심은 성전 재건의 역사를 포기하지 말고 새로운 성전의 영광이 과거 성전의 영광을 능가할 것임을 약속하세요. 그 증거 중에 하나가 두 번째 말씀을 주신 날짜입니다. 오늘 두 번째 말씀이 임한 날이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날짜들은 유대력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태양력과 좀 다른데, 태양력으로 하면 주전 520년 10월 17일입니다. 그런데 10월 17일은 구약의 3대 절기 중 하나인 초막절의 마지막 날이예요. 초막절은 다른 말로 장막절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출애굽을 인도해 주신 은혜를 지키는 절기입니다. 출애굽으로 역사하셨던 은혜의 하나님의 기억해라는 겁니다. 특히 과거 초막절에 어떤 사건이 또 있었냐고 하면 솔로몬의 성전이 초막절에 봉헌되었습니다. 이런 역사 속에서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지금도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하기 때문에 비록 눈으로는 성전이 작게 보이고, 초라하게 보이지만, 그 속에 임재하고 계신 하나님을 통해 더욱 찬란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될 것 확신하고 성전 재건에 임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성전은 외형적인 모습으로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임한 하나님의 영을 통해 영광을 나타남을 가르쳐주십니다. 과거 사무엘이 사울을 책망하면서 사무엘상 15장 22절에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순히 종교적 행위와 모습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임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마리아 여인에게 요한복음 4장 21절에서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라고 하면서 예배의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체가 중요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예배의 장소와 형식이 필요 없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는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 하고, 그 형식 속에 있는 뜻과 의미를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속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간절함과 성령의 임재를 통한 예배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1:1 관계가 더 중요해요. 요즘 우리가 코로나 사태를 통해 예배당에서 예배를 함께 못 드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심정이 오늘 본문에 등장에서 성전에 대한 간절함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의 심정과 비슷할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외형적인 모습이 아닌, 내면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비록 가정에서,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보면 예배를 드리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충만히 누린다면,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성전을 사모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예배당에서 성도들과 함께 다시 예배드릴 날을 사모한다면, 다시 예배당에서 예배드릴 때, 더 큰 감격과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배에 대한 사모함입니다. 예배에 대한 사모함을 통해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되길 바랍니다.
2. 결단과 적용
1) 예배에 집중하기 위해 버려야 할 외형적인 모습은 무엇입니까?
2) 예배 속에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모습들은 무엇입니까?
3. 기도제목
1) 외형적인 모습을 통해 은혜 받으려 했던 모습들을 용서 하옵소서.
2) 드리는 모든 예배 속에서 하나님의 영을 충만히 누리게 하옵소서.
3) 코라나19사태가 빨리 진정되어서, 모든 성도들이 함께 주의 전에서 예배드리게 하옵소서.
4. 찬양
부르신 곳에서 & 전심으로 (김윤진 간사)
https://www.youtube.com/watch?v=SD28KRn_EUs
우리교회가 모든 예배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